노량진에서 볼 일을 보고 집에 가려고 노량진역 6번 출구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더랬죠. 그때 눈에 들어온 표지판 하나!!!
"영화 기생충 촬영지"
노량진에서 기생충을 찍었나? 영화를 인상깊게 본 터라 어떤 장면을 여기에서 촬영했는지 궁금했어요. 700m면 멀지 않으니 따라가 보기로 했어요. 두근두근 했어요. 검색해보면 어떤 장면일지 금방 알 수 있지만 검색하지 않기로 했어요. 두근두근할 일이 별로 없는 요즘 700m의 설렘을 느껴보기로 한 거죠.
정확한 위치를 모르니 표지판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.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쯤에 하나씩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어요. 보통 갈림길에 서있더라고요. 480미터 380미터 130미터 남은 거리가 줄어들수록 기대가 더 되었어요. 따라가다보니 아까 볼 일을 본 그 길로 가더라고요.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거라고 그 길을 세 네번 왔다갔다 했는데도 기생충 촬영지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.
드디어 기생충 촬영지에 도착했어요. 스카이피자!!!! 사실 표지판을 잘 따라와 놓고서 여기 피자집이 있네 하면서 지나쳐서 한참을 갔더랬죠. 그러다가 130미터보다 더 온 것 같은데 하고 다시 되돌아 왔어요. 그제서야 저 플랭카드를 발견한 거죠. 와~~찾았다!!! 소리치고 싶은 걸 참았어요. 밖에서 사진을 찍고 영화 장면을 되새겼어요. 송강호 가족이 여기 테이블에 앉아있던 장면이 생각났어요. 영화 촬영지를 직접 와보는 건 첨이라 한번 들어가보고 싶은데 용기가 안 났어요. 그렇다고 점심을 먹은 상태에서 피자 한 판을 시켜먹자니 부담스러웠죠.
그때 저 보온기 옆에 적힌 문구를 발견했어요. 조각피자 1,300원. 오 저 정도면 해볼만해. 하면서 문을 향해 다가가니 남자 한 분이 나오더라고요. 제가 헤매고 있던 걸 지켜보고 있으셨나봐요. 부끄러운 마음을 누르고 조각피자 두 개를 달라고 했어요. 오늘 조각피자는 불고기피자라고 하시더라고요. 매일매일 조각피자 종류가 달라지나봐요.
계산을 핑계로 가게 내부로 들어갔어요. 거스름돈을 챙기 주시는 남자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게 내부 사진을 찍었어요. 스카이피자는 영화 기생충에서 피자시대였죠. 저 피자시대 박스를 접는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죠. 내부를 찍는 저에게 남자분은 이 동네에서 영화, 드라마 많이 촬영한다고 하시다라고요. 노량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이미지가 있나봐요.
보온기에 호일로 싸인 채로 피자가 보관되어 있는 걸 봉지에 담아주시더라고요. 손으로 만져보면 갓 나온 피자처럼 뜨끈뜨끈했어요. 표지판을 거슬러 다시 노량진역6번출구로 돌아왔어요. 뜨끈한 채로 바로 먹고 싶었는데 마땅히 먹을 곳이 없더라고요. 예전 같으면 길거리에서 먹어볼 만도 한데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또 주변 분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그러지 못하겠더라고요. 결국에는 집에 와서 먹었어요.
뜨끈했던 피자는 많이 식었지만 맛있었어요. 소스맛이 강하지 않았어요. 담백해서 좋았어요. 어렸을 때 먹어본 첫 피자맛 같았어요. 익숙한 맛이면서도 그리운 맛이면서도 이제는 새로운 맛. 노량진에 살면 자주 와서 먹고 싶어질 것 같더라고요.
비가 많이 오는 날 영화 기생충 촬영지를 갔어요.
영화 장면 하나하나가 생각나더라고요.
기생충을 다시 봐야겠어요.
처음 봤을 때 못 느낀 것들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.
지도로 찾아가는 것도 좋지만
노량진역 6번 출구에서 표지판을 따라가는 설렘을 느껴보는 것도 좋지요.